이번에는 무열과 선도산, 효현, 서악, 광명등지에 분포하여 있는 문화재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경주 도봉서당-조선성종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중종1년(1545)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라는 묘화재실로 건립되었다 이후 전란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 황정의 후손
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 일괄을 중건한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경주 장산토우총- 경주시 서악동의 장산 남동쪽 구릉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일대에는 서악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사적으로 지정된 태종무열왕릉, 김인문묘, 김양 묘등 여러 고분이 있다 이 유적은 통일신라시대의 돌방 무덤으로 봉분의
지름 10미터, 높이 7미터이다 여기에 출토된 유물은 항아리와 사발등의 토기 종류가 대부분이고 특히 널방의 바닥
네 모서리에서는 나온 토우가 유명하다
광명동 지석묘- 선사시대 돌로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편평한 돌을 얹은 분묘임
김양의 묘-이 무덤은 김양(808-857)묘로 흙을 둥굴게 쌓아올린 형태이다 무열왕릉 동쪽에 김인문 묘와 나란히 위치하여
있다 김양은 무열왕의 9세손으로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나라에 공헌 하였으며 신무왕이 된 김우징을 도와 민애왕의 뒤를
있게 하였고 다음왕인 문성왕도 받들었다
김유신 장군묘- 이 무덤에는 김유신(595-673)장군이 모셔져 있다 충효동 송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끝에
위치해 있으며 흙을 둥굴게 쌓아올린 모양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 마지막왕인 구형왕의 증손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었으며
무예와 지략이 뛰어나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앞장서서 지휘하였다
김유신장군 신도비각- 김유신 장군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이의 사적을 기록한 비이다
김인문 묘- 무열왕릉 동쪽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 이 무덤에는 김인문(629-694)이 안치되어 있다 김인문은 신라 무열왕의
둘째 아들이며 문무왕의 친동생으로 23세에 당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다가 돌아와 무열왕을 도와 김유신 장군과 함께
삼국을 통일하는데 이바지 하였다
문성왕릉- 신라 제46대 문성왕(재위 839-857 김경웅)이 모셔진 곳이다
법흥왕릉- 신라 제23대 법흥황(재위 514-540 김원종)을 모신곳이다
서악고분군 1호- 고분이란 사회구성원간의 평등한 관계가 깨어져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분리 된후 지배계급들 자신
들의 우월한 정치, 경제 혹은 종교상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일반인들롸 다른 형태로 만든 무덤이다
서악고분군 2호
서악동 귀부-이 거북모양의 받침돌은 신라 태종무열왕(재위654-661)의 둘째 아들로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인문
(629-694)의 묘비를 세웠던 곳이다 받침돌이 있는 거북은 태종무열왕 귀부의 모습과 비슷한 양식으로 네발로 힘있게
나아가면서 목을 앞으로 길게 빼고 있다
서악동 삼층석탑-이 탑은 화강암으로 축조된 통일신라시대의 3층석탑으로 모전탑 계열에 속한다 높이는 4.06미터로
서악서원의 뒷편 선도산 기슭에 위치하여 있다 바닥돌 위에 다듬은 돌덩이 여덟개를 2단으로 어긋물리게 쌓아 기단을
만들었으며 1층 몸체의 남쪽 문틀 양쪽에 인왕상을 돋을 새김하였다
서악리 고분군- 태종무열왕릉 뒷면의 구릉에 분포하는 대형 무덤이다 이곳의 무덤들은 경주 분지의 대형무덤과 비슷한
형태로 둥굴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투 무덤으로써 내부 구조 시설은 확실히 알수 없다 무덤 주인에 대하여는 첫번째는
법흥왕릉, 두번째는 진흥왕릉, 세번째는 진지왕릉, 네번째는 문성왕릉으로 추정 하기도 한다
서악 마애입불상- 신라 사람들은 경주의 서쪽인 선도산 정상부근을 서방정토로 생각하고 이곳에 아미타 삼존불을 새겼다
조각하기 힘든 암석에 높이 6.85미터나 되는 거구의 여래 입상을 돋을 새김하였다
서악서원- 조선명종 16년(1561) 경주부윤 이정(1512-1571)이 김유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당시 경주지역의
선비들이 설총과 최치원의 위패도 같이 모실것을 건의 하였다 이에 이정은 퇴계 이황과 의논하여 함께 모시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서악 정사라 이름하고 손수 글씨를 써서 현판을 달았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서원이 모두 불탔고 인조때
다시 세워져 나라에서 서악서원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선도산 성모사 유허지- 박씨 문중에서는 신도성모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로 알고 있고 이 성모사를 신라시대때 부터
지금까지 관리 해오고 있다 유허지란 역사적 기록만 남아 있고 그장소에 유물, 문화재가 없는것을 의미한다
선도산에서 내려다 본 동부사적지 및 주택지
선도산에서 내려다 본 오릉 사적지
진지왕릉-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576-579, 김사륜/김금륜)이 모셔진곳이다
진흥왕릉-신라 제24대 진흥황(재위540-576, 김삼)이 모셔진 곳이다
충효고분 공개석실분-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이다 주검을 넣어두는 방인 널방은 29제곱미터의 면적을 가진 정방형
이며 무덤안으로 들어가는 널길이 남쪽으로 마련되어 있다 이 무덤은 도굴되었던것을 1974년 수습 발굴함으로써
내부구조가 밝혀지게 되었으며 발굴조사 당시 말뼈 32점만 출토되었을뿐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유물은 없었다
태종무열왕릉-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재위654-661, 김춘추)을 모신곳이다 경주 북서쪽에 있는 선도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여 있다
태종무열왕릉 귀부- 신라 태종무열왕릉(재위654-661)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다 무열왕릉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빗돌은 없어지고 거북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았다 길이 333센치미터,
너비 254센치미터, 높이 86센치미터이다
헌안왕릉- 신라 제47대 헌안왕(재위857-861 김의정)이 모셔진 곳이다
효현리 삼층석탑- 이 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보여주는 3층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 졌으며
이중 기단위에 세워졌다 높이는 4.6미터로 규모가 비교적 작고 기단의 기둥 새김이 면마다 아래위에 세개씩이며
지붕돌의 층단받침이 4단인 점으로 보아 9세기 경에 세워진것으로 짐작된다
효현리 지석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