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홍보/경주 문화재

동천 천북 강동

금강석영상 2012. 6. 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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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동천지역과 천북지역 강동지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경주우안양수장- 1919년에 건축된 양수장으로서 근대기 지방의 양수장 시설의 원형을 확인 할 수 있는 중요자료이며

형산강의 물을 양수기로 퍼올림

 

경주이씨시조알상지-경주의 토착세력인 경주6촌 중 하나로 경주 이씨의 시조인 이알평의 탄생설화의 유적지로써 경주시 동천동

탈해왕릉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진한땅에 여섯촌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알천 양산촌이며 그곳의 촌장은

알평이었는데 그는 처음 하늘에서 표암봉을 내려와 급량부 이씨 즉 경주이씨의 조상이 되었다'는것이다

 

구황동모전석탑지- 이 탑은 중국 벽돌탑을 본터 쌓은 분황사 탑과 같은것이었는데 지금은 다 허물어지고 남 북 감실의 둘기둥

2쌍만 남아 있다 돌기둥이 배치된 모양으로 미루어 볼때 원래의 탑은 1변길이 4.5미터쯤되는 킈기로 첫 옥신을 쌓고 그 사면에

갑신을 만들어 사방불을 모셔 놓은 형식이 었음을 알 수 있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산인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약3미터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 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 남쪽면에는 삼존입상이 북쪽면에는

보살상 두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 보살상 중 한분은 얼굴이 열하나 팔이 여섯달린 관세음 보살 입상으로 우리나라에

드문것이다

 

동천동마애삼존불좌상- 이 불상은 경주 북쪽 소금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간 곳에 위치한다 부처님 세분을 얕은

돋을 새김하였으니 지금은 바위면이 떨어지고 이끼가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가운데 여래상은

민머리이며 머리둘에에는 두광을 2중으로 하였고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을 큼직하게 조각하였으며 내부에 선을 돌렸고 얼굴은

넓적하게 조각하였다

 

동천동 표암비각-표암이라는 바위 이름은 "박바위" 혹은 밝은 바위를 뜻하며 신라 6촌가운데 급량부였던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 한다

 

명활산성- 이성은 경주 보문호 남쪽에 위치하는 명활산을 둘러싼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토성(5키로미터)과 석성(4.5키로미터)이

함께 있다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성을 공격해 왔으나 격퇴 시켰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산성은 그 이전에 쌓은것으로 여겨

진다 자비왕 18년(475)에는 명활산성을 궁성으로 사용하였다가 소지왕 1년부터 월성으로 다시 옮겼다 1988년 성 주변에서

진흥왕 12년(551)에 만든 명활산성 작성비를 발견하여 당시의 축성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목조문무인상- 이 상은 약 12평의 한옥 내부에 봉안되어 있으며 적,록, 황색등으로 칠하여 놓고 있어 그 원형을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는 문, 무인의 두 상이다 두 상 모두 홰나무 재질로 되어 있으며 문인상은 높이 총120센치미터 두고 55센치미터 두폭 43센치미터

 관모너비 80센치미터 신고 65센치미터 견폭43신치미터이며 무인상은 높이ㅣ 총140센치미터 두고 76센치미터, 두폭 38센치미터,

신고 64센치미터, 견폭 43센치미터의 크기로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무장사지아미타조상사적비 이수및귀부- 이 비는 신라 39대 소성왕의 비인 계회부인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아미타불을    봉조

할때 건립된것으로 조성연대는 소성왕이 죽은 다음해(801)로 추정된다 정조때 경주부윤이던 홍양호는 제무장사비문에서 신라의

한림 김육진 글씨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무장사비라 하였으나 나중에 그 내용을 따라 '무장사아미타불조상사적비"라 하였다

 

무장사지삼층석탑-이 절터는 암곡동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발견된 '무장사아미타불조상사적비'에의해 무장사터

임을 알게 되었다 이 탑은 이중 기단위에 3층의 몸돌을 돌렸다 1층 기단에는 모서리 기둥과 2개의 안기둥을 조각하고 덮개돌을

올렸다 2층 기단은 8개의 돌로 짜 맞춘다음 각면에 2개씩 원형에 가까운 창 모양의 안상을 조각하여 모서리 기둥과 안기둥에 새겨

넣었다

 

 미탄사지삼층석탑- 이 탑은 완전히 붕괴되었던것을 1980년 6월에 탑 기단부와 주위 일부를 발굴조사하여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하였던것이다 발굴조사 당시 탑 기단부에서 소금동불입상수 정제장, 금동제영락 등 29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 탑기단부의 적심부를 돌과 찱흙으로 다진후 불로 구워서 단단하게 하였던 공법이 밝혀졌다

백률사금동약사여래-약사여래란 불교에서 동방의 정류리 세계에 있다고 하는 부처로써 일찍이 보살행을 행하였고 12개의

대원을 세워 그것을 완성했다고 하며 중생의 병과 괴로움을 구제 할 수 있다고 여긴 부처이다 이 불상은 불국사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및 금동아미타물좌상과 함께 통잀니라시대 3대 금동불로 손꼽히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 금동불로는 유일한

등신대의 입상이다

 

성남서사-운암 최봉천 선생을 봉행하는 서사로 1984년 항의에 의하여 창건되었으며 경내에는 상충사, 경의당, 신경재, 덕수재,

한탁헌, 탁충문 등이 있다

 손곡리 물천리유적- 경주손곡동과 물천리에 걸쳐있는 이 유적은 야트막한 아샨의 북서 남동쪽 사면과 정상부를 포함하는 대규모의

복합유적이다 이곳은 원래 한국 마사회가 경마장을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유적분포가 확인되어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경주

문화재 연구소 등 3개 기관에서 5년에 걸쳐 발굴 조사후 2001년 4월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숭신전- 이 건물은 신라 제4대 석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건물로 광무 2년(1898)에 군수이던 권상문의 제안으로 석필복이 월성

안에 지었다 그리고 광무 10년(1906) 숭신전으로 편액을 받았다 그 후 1980년 석탈해왕을 옆인 지금의 위치로 옮겨서 지었다

 

알천제방수개기- 경주의 북천은 알천 또는 동천으로 불리어져 있는데 예로부터 홍수가 잦아 [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도 수차례나

기록되어 있다 이 알천 제방수개기는 동천동 금학산의 서남쪽 능선끝에 드러난 바위의 맨 아래쪽에 새겨져 있는 마애비이다

이 바위는 남서향으로 전체 높이가 약3.5미터이며 크게 3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맨 아래단의 3폭 병풍처럼 생긴 면에 글이

새겨져 있다

 

오야리 삼층석탑-벽돌탑을 모방한 3층의 석탑으로 높이는 약2.5미터이다 거대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삼아 윗면의 평평한 곳에

2개의 돌로 받침대를 놓고 몸돌을 올렸다 1층 몸둘레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는데 남쪽면에는 높이 37센치미터, 폭31센치미터

정도의 작은 불상을 안치하는 방인 감실을 만들었다

 

운곡서원- 운곡서원은 조선정조 8년(1784) 역내의 후손들이 이곳에 추원사를 세우고 안동 권씨 시조 고려태사 권행 선생을 봉향하고

죽립권산해, 귀봉 권덕린 공을 배향하는곳으로 고종 5년(1868) 대원군 금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광무 칠년(1903)에 다시 설단하여

제향을 해오다 1976년에 중건하여 향에 의하여 운곡서원으로 개액했다

 

운암공부조묘-운암 최봉천(1564-1597)은 조선 선조21년(1588) 무과에 급제한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의켜 경주성과 울산성

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영천창암 전투에서 장렬히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후 선무원종공신 1등으로 책봉되었고 순조21년(1821) 가선

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이 사당은 그의 문중에서 성남서사 왼쪽에 같은해 부조묘로 세운 정면 3칸, 측면1칸반 규모의 기와집이다

 

월성화산 회유토기요지-이 가마터는 화산리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작은 송림이 있는 산 기슭에 있는 토기 요지이다 지금은 밭으로

변하였으며 주위에는 토기 조각들이 많이 흩어져 있다 이 일대의 밭에서 발견되는 토기 조각들은 굽기에 실패하여 버려진 조각들로

짜그러지거나 서로 붙은것이 많으며 가마벽 조각들은 굳은 점토질로 되어 있다

 

 

유연정- 이 정자는 안동 권씨 시조인 고려태사 권행과 죽림 권산해, 구봉 권덕린 등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운곡서원에 딸린 건물이다

이 정자는 순조 11년(1811)도연명의 자연사상을 본 받기 위해 자연경관이 빼어난 계곡위에 세웠다고 한다 건물은 앞연3칸, 옆면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왼쪽칸은 마루로 하였고 가운데 칸은 온돌방이며 오른쪽칸도

온돌방으로 하였다

 

 

종오정일원-조선영조때의 학자인 문효공 최치덕(1699-1770)의 유적지로 종오정, 귀산서사, 연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효공은

숙종25년(1699)에 태어나 영조 46년(17700에 72세로 돌아갈때까지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여 70여명의 제자를 길러 냈다

 

천군동 삼층석탑-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동탑 6.73미터, 서탑 7.72미터이다 2기 모두 이중 기단위의 일반형에

속하는 삼층석탑으로 규모나 수법이 같으므로 같은 계획아래 세워진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이 있던 절 이름은 알 수 없지만

1939년에 절터를 발굴 조사 하였으며 1967년에는 서탑 북쪽에서 많은 벽돌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천군동 폐탑-일명 피막골이라고 부르는 곳에 초층옥신과 기타 부재가 흩어진 상태로 있다 옥개석에는 사면에 각각1구씩

입상으로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신석 윗면에는 방형의 사리공이 아닌 원형의 사리공이 있다

 

탈해왕릉-신라 제4대 탈해왕(재위57-80)이 모셔진 곳이다

 

헌덕왕릉-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809-826)이 모셔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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