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홍보/경주 문화재

동남산 반월성

금강석영상 2012. 6. 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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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화재 탐방에 동남산 과 반월성 쪽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경주월성- 이곳은 신라시대 궁궐이 있었던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 또는 월성이라 불렀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반월성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성을 쌓기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왕이 어렸을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 했다고 한다

 

경주월성 내

 

계림-첨성대와 월성사이에 위치해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깊은곳이다

신라탈해왕때 호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내며 걸려 있음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금궤를 내리고 뚜껑을 열자 궤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을 김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남산동 삼층석탑- 보물124호로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며 높이는 동탑7.04미터, 서탑5.85미터이다 쌍탑중

동탑은 옥개석이 모전석탑의 형식이고 서탑은 일반형 석탑이다 동탑은 넓은 이중의 지대석 위에 8개의 석괴로써

입방체의 단층기단을 구성해 놓았다 특이한것은 기단을 이룬 돌 여덟개의 크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돌과 돌이 연결된

선이 십자형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남산동석조감실-이 감실의 크기는 높이 2.5미터 내부공간의 바닥길이 1미터, 높이 1.4미터, 깊이 0.9미터인데 석조 불상을

모셔 두던곳이다 남향을 하고 있으며 그리 다듬지 않은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삼고 그 위에는 방형 판석 4매를 결구하여

불상을 안치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판석의 내면은 다듬고 외면은 다듬지 않은것을 사용하였다

 

 남산동의 폐탑지 전경

 

경주 남산 미륵곡석조여래좌상- 이 불상은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에 신라시대 보리사 터로 추정되는곳에 남아 있는 석불

좌상이다 전체 높이 4.36미터, 불상높이 2.44미터의 대작이며 현재 경주 남산이 있는 석불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

연꽃팔각대좌 위에 앉아 있는 이 불상은 석가 여래 좌상이다 반쯤 감은 눈으로 이 세상을 굽어보는 모습이라든가 풍만한 얼굴의

표정이 자비로우면서도 거룩하게 보인다

 

 남산불곡 마애여래좌상-이 불상은 남산 동쪽 기슭 한바위에 자연암을 0.9미터나 파내어 감실을 만든후 조각한 여래 좌상이다

장찰골 애기 부처와 배리 삼존불과 함께 신라 석불로는 아주 이른 시기인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것으로 추정된다

 

남산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칠불암위의 곧바로 절벽 면에 새겨져있어 마치 구름위에 앉아 있는 듯이 보이는데 머리에 삼면보관

을쓰고 있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서 설법하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남산일원- 경주 남쪽을 가로막아 솟아 있는 해발 468미터의 금오산과 494미터의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 부르며 사적 제331호로 관리하고 있다

 

남산일원내 부석 모양

 

 칠불암마애불상군-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로써 '칠불암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탑곡마애불상군-통일신라시대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남쪽에 3층 석탑이 있어 탑곡이라 부른다 북쪽면에는

마주선 9층 목탑과 7층 목탑 사이에 석가여래가 연꽃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탑앞에는 사자 두마리가 새겨져있다

동쪽면에는 가운데에 여래상이 새겨져 있고 주위에는 비천상,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 나무등이 새겨져있다

 

 

망덕사 당간지주- 이 당간지주는 망덕사터 서남쪽 65센치미터 간격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으며 형태를 보면 안쪽면은

위로 평면을 이루고 나머지 세면은 아랫쪽에서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진다 기둥의 맨 위은 바깥쪽이 둥글고 경사지게

처리 되있다

 

망덕사지 절터

 

상서장- 상서장은 신라말기의 학자 고운 최치원이 나랏일을 걱정하여 시무십여조의 글을 진성여왕에게 올렸던곳이다

지금은 그의 영정을 영정각에 모시고 매년 4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순조 이후에 건립한것으로 전한다

 

서출지-이곳은 까마귀가 신라 소지왕(재위479-500)의 목숨을 구한 전설이 서려 있는 연못이다 어느날 소지왕이 궁 밖으로

거동하니 쥐가 나타나 '까마귀가 가는곳으로 따라 가라' 하였다 왕이 그 말대로 따라가 이 못에 이르렀을때 한노인이 나타나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고 쓴 글을 바쳤다 이에 왕이 궁으로 돌아와 활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랬더니 그속에 숨어 있던

중주와 승려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뒤로 이 못을 "서출지"라 하고 정월 보름에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이라는

풍속에 생겼다고 한다

 

석빙고-이 석빙고는 조선영조 14년(1738) 월성안에 만든 얼음창고이다 월성안의 북쪽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길이 19미터, 너비 6미터, 높이 5.45미터의 석실(돌방)은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졌는데 약 1000여개의 돌이 쓰였고  천장의 외부는

봉토의 현상이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천장에는 공기구멍 셋이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서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석빙고 내부

 

석빙고 내부에서 자란 풀

 

 성덕대왕신종-  이 종은 현재 남아 있는 한국의 최대의 종이며 일명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으로 불린다 크기는 높이 3.64미터,

입지름 2.25미터이다 1976년 국립경주 박물관을 신축 이전함에 따라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압지(둥궁과월지)- 문무왕이 궁내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만들어 무상 12봉을 상징하고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를 길렀다

그 서쪽에 임해전터가 있는데 초석과 섬돌이 아직도 밭이랑 사이에 남아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현재 안압지 서쪽의 건출지를

발굴조사 결과 신라 동궁의 건물터임이 입증되었다

 

동궁과 월지 모습

 

염불사지삼층석탑- 동남산 봉구곡 자락 남산동 1130번지 일원에 위치한 염불사지에 대하여 [삼국유사]에는 한 스님이 하루에

몇번씩 시간을 정하여 염불을 외우셨다 법당에 앉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그 소리가 당시 서라벌 360방 17만호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여 염불사라 불렀는데 스님이 돌아가시니 그의 초상을 흙을 만들어 염불사에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강왕릉-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886-887)이 모셔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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