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홍보/경주 문화재

경주시가지 지역

금강석영상 2012. 7. 13.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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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경주시내 구역을 중심으로 문화재를 살펴보기로 한다

 

 

  경식- 이 장신구는 1973년에 발굴된 천마총의 나무널 안에서 출토된 너비약30샌치미터, 길이30센치미터의

목걸이(경식)이다 이 목걸이는 그  하단이 허리띠에 이르며 피장자의 가슴 한가운데에 드리워져 있다

대형의 주식이 목 좌우에서 길게 늘어져서 하단에서 큰 곡옥으로 결합되었다

 

경주교동 최씨고택- 이 가옥은 경주 최씨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옆 양지 바른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고방으로 구성되어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에 불타고 주춧돌만 남았다  안채는'디" 모양이고 대문채는 "ㅡ"자 모양

이다

 

경주문화원- 경주 지역 고유 문화개발, 보급, 보존, 전승 및 선양사업, 향토사의 조사 개발 및 자료수집

등 지역문화 발전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곳이다

 

경주읍성-이 성은 경주시 동부동, 북부동, 서부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읍성으로 둘레는 2,400미터이며

현재 대부분의 성벽이 무너지고 일부만 남았다 고려 태조왕건이래 역대 고려왕들은 경주를 중요시하며 940년

에 안동대도독부를 설치하고 994년에는 동경 유수관을 두는 등 지방자치의 중심으로 삼았다

성은 고려 현종 3년(1012)축성되었으며 성벽의 높이는 3.6미터 정도이나 시가지 화장에 따라 대부분이 헐리고

90미터의 성벽만 남았다

 

경주향교- 이자리는 원래 신라 신문왕2년(682)에 처음 세워진 국학이 있던 곳이다 경주 향교가 처음지어진

시기는 잘 알 수 없으나 조선 성종23년(1492)에 서울의 성균관을 본 떠 고쳐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불탄뒤

선조 33년(1600)에 대성전과 전사청을 다시 지었다 이어서 선조 37년(1604)에 동부와 서무를 짓고 광해군 6년

(1614)에 명륜당과 동재, 서재를 더 지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주향교

 

계림-이 숲은 청성대와 월성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 났다는 전설의 유서 깊은곳이다

신라 탈해왕때 효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하여 성을 김,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 구림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계림 숲

 

관란이선생 정효각 및 문호사- 이 비각은 관란 이승회(1515-1599)의 출천대효가 일제의 표상이 됨을 영원토록

추망하고 후세인으로 하여금 잊지않기 위하여 세운것이다 문호사는 4칸의 기와집으로 딴곳에서 이건하였다고

하며 최근에 세운 창의비가 있으며 총높이 158센치미터, 폭 35.5센치미터, 두께18센치미터이다

첨성대 인근에 접하여 있다

 

교동석등- 이석등 흥륜사지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밝혀 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들과 머리 장식을 올리는데 이 석등은 화사석와 지붕돌을

두지 않은 독특한 모습이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머리장식이 남아 있다 옆으로 살짝 비둟어졌다

 

구 서경사- 경주시 서부동 주택가 가운데에 남아 았는 이 건물은 1932년경 일본에서 건축자재를 가져와

일본 전통불교 건축양식으로 세운것이다 서경사는 일본 불교 조동종의 경주 포교소로 해방전에는 신자의

대부분이 경주에 거주 하던 일본인들이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농촌지도소와 사방관리소, 해병전우회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금관총 금관-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금관총에서 발견된 신라의 금관으로 높이 44.4센치미터, 머리띠 19센치미터

이다 1921년에 민가를 수리하다가 발견된 이 금관은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금관은 외관으로 신라

금관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다

 

금모- 이 관모는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16센치미터, 너비 19센치미터의 금모다 나무널(목관)밖의 머리쪽에 있던

껴묻거리 상자와 널사이에서 출토되었으며 각각 모양이 다른 금판 4매를 연결하여 만들었다 위수분은 둥글고

내려갈 수록 넓어져서 아랫면은 가운데가 들린 반월형이 되어 양끝이 처진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금목걸이- 이 장신구는 1973-1975년에 걸쳐 발굴된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길이 19센치미터, 너비 18센치미터의

금목걸이인데  나무널 안에 묻힌 사람의 목에 걸린채 발견 되었다

 

금제접관식- 이 장신구는 1973년 발굴된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23센치미터 양날개 너비 23센치미터인 금제

관식이다

 

금제조익형관식- 이 장신구는 1973년 발굴된 천마총에서 출토된 높이 45센치미터, 날개끝 너비 40센치미터인

금제관식이다

 

기마형인물형토기 -국보 275호임

 

김호장군고택- 임진왜란대 공을 세웠던 부산첨사 김호장군의 생가

 

내물왕릉-신라 제17대 내물왕(재위356-402)을 모셔진 곳이다

 

노동리고분군- 이 고분군은 월성을 중심으로 서에 북동 방향으로 분포하는 많은 신라고분 중 서북편의 말단부에

위치하였다 고분들은 중앙에  나 있는 도로를 경계로 하여 노동리, 노서리 고분군으로 나뉘어 진다

 

노서동 석불입상- 이 불상은 다리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있으며 얼굴은 파손되어 모양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광배는 머리 둘레의 두광과 몸 둘에의 신광이 각각 2중선으로 표현되었으나 신광은 완전히 파괴되고 두광도 망가져

자세히 알 수없다

 

노서리고분군- 이곳 노서동 넓은 평지에는 크조 작은 고분 13기가 있다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더불어 그 규모에

있어서 쌍벽을 이루고 있는 제130호 고분을 비롯하여 금관총, 서봉총, 1946년 고구광개토 대왕의 이름이 새겨진

청동그릇이 발견되었다

 

노동리 고분군

 

대릉원 -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로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붙여진 일련번호 90-114, 151-155호인  원형으로 흙을 쌓아올린 30기의 무덤이다 큰 무덤은 돌무지 덧널 무덤이고

주변에는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이 있다 대릉원 안에는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등이 있다

  대릉원

 

동경관- 이 건물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이어져 왔던 적사에 딸린건물이다 195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객사는 외국 손님이나 서울의 벼슬아치가 그 지방에 오면 머물게하고 대기 하였던곳이다 정청에는 조선태조의

위폐를 모시고 동서쪽 건물은 6관의 관방이다

 

동부동 은행나무- 이 나무는 나이가 약 500년이며 높이 19미터, 둘레 6.06미터, 지름 2.1미터, 수관 폭 20미터로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도 30미터 거리에 한그루가 더 있으며 두나무 모두 암나무로 열매가 풍부하다

 

동부사적지- 이 이대는 동서로는 안압지에서 부터 교동까지 남북으로는 월성 남쪽의 남천에서 현재 고분공원 앞

첨성로에 이르는 광대한 사적지대이다

 

 

동부사적지 설경

 

미추왕릉- 이 능은 신라 제13대 미추왕(재위262-284)을 모셔 놓은곳이다

 

삼랑사 당간지주- 삼랑사는 신라 진평왕 19년(597)에 처음건립되어 역대왕의 행차가 잦았던 이름 높은 절이었으나

지금은 이 당간지주만 남았다 이 기둥은 높이 3.7미터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되게 만들어져 있는데 마주보는 면의

바깥면에 세로 줄무늬를 도드라지게 세겼다

 

서봉총금관- 경주시 노서동 서봉총에서 출토된 높이 30.7센체미터, 지름18.4센치미터, 드리개 24.7센치미터의

금관이다

 

인왕동고분군- 이 고분군은 월성의 북쪽지대에 분포하는 황오동 고분군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경주

중심부 평야지대에 남아 있는 고분군 가운데는 가장 동남편에 위치하여 있다

 

성동전랑지- 이 터는 경주고등학교 서쪽, 북천의 남안에 있는 건물지이다

 

주전지- 이 터는 집경전터로 전해지고 있다 집경전의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왕조 실록 등 문헌 기록에

의하면 태종때 태조왕의 진영을 봉안 하였고 세종시에는 전우로 개조하였으나 임진왜란때에 진영을 강원부로 옮겨

그 자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집경전 비 - 집경전 유지에 있었던 조선 정조의 친필로 쓴 "집경전구기"란 비석이다

 

천마총 - 천마총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돌무지 덧널무덤이다 밑둘레 157미터, 높이 12.7미터나 되는 비교적 큰

무덤으로 5-6세기경에 축조된 어느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구조는 평지위에 나무널과 꺼묻거리 상자를 놓고 그 바깥에 나무로 짠 덧널을 설치하여 돌덩어리를 쌓고

흙으로 덮었다

 천마총내부

 

첨성대- 이 첨성대는 신라선덕여왕(재위632-647)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대이다

 

청동 제초두 - 이 유물은 1973년 발굴조사된 천마총의 껴묻거리 상자 안에서 나온 몸통지름 18.2센치미터,

뚜껑 5.8센치미터, 자루길이 13센치미터인 청동제 초두이다

 

춘양교지(일정교지)- 이 다리터는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되었던 일정교의 유지이다 일정교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경덕왕19년조(760)에 궁궐 남쪽 문천위에 월정교, 춘양교 두다리를 놓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황남고분군- 경주시내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초기의 무덤들오 일부는 대릉원 구역안에 있다

 

황남동 효자 손시양비 - 이 비는 고려 명종 12년(1182)에 세워진 정려비이다 화강암을 네모기둥 모양으로

치석한것인데 비 몸만 있을뿐 아래의 받침돌과 위의 머릿돌은 없다

 

황오동 고분군 - 이 무덤들은 인접지역에서 발굴된 무덤 구조로 미루어 볼때 주로 4-5세기경의 왕족 또는

귀족을 묻은 돌무지 덧널 무덤으로 추정된다

 

황오동 삼층석탑- 이 탑은 원래 효공왕릉 부근인 경주시 동방동 장골사자사터에 무너져 있던것을 1936년

경주역을 지금의 위치로 옮기는것을 기념하여 이곳에 다시 세웠다 큼직한 2단 받침위에 4개의 돌을 사용하여

기단을 올렸는데 모서리 기둥을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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