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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와 장릉

금강석영상 2010. 6. 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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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이 유배온 곳이 청령포이다 이곳은 3면이 깊은 물인데가 뒤로는 육륙봉이 가로막고 있어배가 없으면 드나들 수 없는 천연의 요새같은 지형을 이루고 있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지금의 청령포에는 영조2년(1726)에 세운 금표비와 영조 39년(1763)에 세운 단묘재본부시유가 서 있어 옛일을 전하고 있다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

 

2008년 12월 16일 명승 제50호로 지정된 청령포 전경

 

청령포에 있는 소나무 숲

 

청령포에 있는 단종어소로 들어가는 담장

 

 1763년 세워진것으로 총높이 162센치미터크기의 오석으로 제작된 단묘재본부시유지로서 앞면에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라는 글이 영조대왕의 친필로

 음각되어 있다

 

 밀랍인형으로 만든 단종 방앞에서

 

 청령포 뒷산 육육봉과 노산대 사이 층암절벽 위에 있는 망향탑으로 단종대왕이 유배 생활을 할때 자신의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속에서도 한양에 두고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 한다

 

 청령포 수림지에 위치하고 있는 단종의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관음송

 

 청령포 어가 모습으로 승정원 일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장릉은 조선왕조 제6대 임금 단종대왕능이다 세조 2년(1456)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 박팽년등이 상왕복위 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였으며 다음해 6월 21일 단종은

  상황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었고 그 다음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었으며 그곳에서 2개월 남짓 기거하시던중 홍수로 인하여 관풍헌으로 옮기셨다

 세조3년(1457)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책이 발각되어 노산군은 폐서인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 사사되었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에 흘렀는데

 영월호장 엄홍도가 "옳은일 하다가 화를 입는것을 달게 받겠다"는 충정으로 옥체를 수습하여 이곳에 밀장하였다

 

 단종대왕능으로 가는 길

 

 조선왕조 제6대 임금단종대왕능으로서 중종36년(1541)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의 현몽에 따라 노산묘를 찾고 수축봉제하였다

 

 장릉안에 있는 우물터

 

 단종대왕 능앞에서

 

 정조15년(1791)에 건립한것으로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32인, 조사위196인, 환자군노44인, 여인위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폐를 모셔놓은 장판옥

 

 정자각은 영조9년(1733)에 건립하였으며 단종대왕 제향시 제를 올리는곳으로 집의 모양이 정자 모양으로 건립된 제전이므로 정자각 또는 배위청이라 한다

 

 단종비각은 영조 9년(1733)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정자각 수복실과 함께 건립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이라는글이 음각되었으며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엄홍도의 충절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정조2년(1726)에 세운 엄홍도 정여각

 

 조선왕조 역대 왕능의 사진 전시

 

 재실은 처음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32년에 중건하였다 이곳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기거 하였으며 매년 단종제향을 지낼때 이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기구를 보관한곳이다

 

 장릉의 재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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