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2014. 6.3,)
지난달 31일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이른바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한 촛불집회에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여연대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 성향 단체들이 주최한 집회였다. 참석자들은
집회가 끝난 뒤 오후 7시 반부터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한 행진로는 청계광장에서 시작해
광교사거리, 보신각, 종로2가, 을지로2가, 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러나 150여 명은 한국
프레스센터 앞에서 “청와대로 가자”며 방향을 바꿨다. 일부는 보신각으로 향한 행렬을 향해 “청와대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습니다. 언제까지 등 돌려서 갈 것입니까”라고 선동했다.
종로경찰서 류성호 경비과장이 확성기로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불법 행진이니 해산하라”고 명령했지만
시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일부 시위자는 경찰과 심한 몸싸움을 벌였다. “경찰 ××들 뭐하는 건데”라고
욕설을 퍼붓고 경찰관의 멱살도 잡았다. 류 과장은 1차에서 5차까지 경고 방송을 했다. 한 번 할 때마다
“해산하라”는 말을 3, 4차례 반복했다. 시위자들이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 교보문고 앞까지 불법 행진을
했는데도 경찰은 체포 작전은 엄두도 못 내고 몸으로 막기에 급급했다. 경찰은 1시간 가까이 해산 요구만
할 뿐 속수무책이었고 시위자들은 공권력의 권위를 철저히 무시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3월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이 불법 집회에 참가해 불법 행위를 하면 곧바로 연행하겠다.
위법 행위를 하면 바로 책임을 물어 연행해 불법 집회 분위기를 현장에서 꺾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경찰의 무른 대응을 보면 텅 빈 ‘공(空)권력’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지난해 미국에
서는 22선(選)의 찰스 랭걸 하원의원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하다 불법 도로 점거로 경찰에 팔을
뒤로 꺾인 채 연행됐지만 누구도 공권력 행사가 과잉이라고 비판하지 않았다.
종로경찰서 43기동대 소속의 윤호 경장은 40대 여성 시위자가 휘두른 검은색 통굽구두에 맞아 왼쪽 머리가
찢어져 병원에서 12바늘이나 꿰맸다. 당국은 공권력을 유린한 범법행위에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불법 시위 저지는 고사하고 폭력 시위꾼이 휘두른 신발에 얻어맞는 경찰은 이 나라 공권력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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