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성은 경주 동부 보문저수지 남쪽에 위치하는 명활산 정상부인 속칭 흰등산을 감싸고 있는 길이 약 4.5키로미터
의 포곡식 석성과 남쪽 산정을 감싸면서 석성 안쪽 일부까지 둘러싼 약 5키로미터의 테뫼식 토성으로 이루어진
산성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593년(진평왕15)에 이성을 개축하였는데 규모가 3천보라 하였고 지리지에는
1,906보라고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규모로 보아 3천보라는 기록이 맞는것 같다
축성연대는 알수 없으나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보면 405년(실성왕4)4월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처음 보이는데
이로 미루어 명활성의 축조시기가 적어도 실성왕(402-417재위) 이전임은 분명하다 또한 축성에 이용된 석재들이 다듬지
않은 할석을 사용했던것으로 보아 신라초기의 축성방식아라 하겠다 그 후 수차례에 걸쳐 수축 및 개축을하였다
이 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삼국사기의 실성왕,내물왕,눌지왕대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북으로는 고구려, 동으로는 왜의
침범이 자주 있었는데 명활산성은 여기에 대비하여 쌓았던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431년(눌지왕15)에는 왜인이 이 성을
포위하고 점령하려 했는데 이것은 명활산성이 동해구에서 경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어 경주를 방호하는데 큰 역활을
했음을 말해 주는것이다 473년(자비왕16)7월에 명활성을 개수하고 475년 정월에 이 성으로 이거했다는 기록은 이때 정궁인
월성을 재정비하여 면모를 일신한 사실과 관계 있는것으로 폴이된다 또한 선덕여왕 16년(647)에는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반란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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