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여행사진이야기

적멸보궁

금강석영상 2014. 5. 7.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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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건립한 이래로 종교적 성지로써의 역할을 해왔다. 큰 불교적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행사가 행해졌으며, 주요 선승들과 고승들이 공부를 위해 선택한 장소도 적멸보궁이

었기에 자연스레 불법의 전승 장소라는 명맥도 이어갔다.이러한 불교 성지로서의 가치가 극에 달한 것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크게 진흥시킨 고려에 이르러서이다.

 

 

물론 고려시대에는 적멸보궁뿐만이 아니라

길거리에서도 일반 민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흔한’ 절들이 세워졌지만, 그럴수록 진신사리를 봉안

하고 있는 성지로써의 적멸보궁이 가지고 있는 유일함과 특별함은 더욱 빛을 발했다.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적인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많은 불교 신도들이 탄압받았고, 적멸보궁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결국 임진왜란 때, 구국의 기치를 들고, 승병과 의병을 일으킨 중심지가 되었던 것도 적멸보궁의

힘이 크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명대사는 전국의 명산, 명승지, 특히 적멸보궁을 중심적으로 돌아다니며,

승려들의 참여를 촉구하였고, 결국 이러한 노력은 적멸보궁의 공부하던 선승들이 구국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임진왜란 때 통도사의 설화를 하나 살펴보면, 사리를 훔치려던 왜군들이 처음에

함을 열어보니 두꺼비가 사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에 놀라 함을 닫았다가 다시 열어보니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사리를 지키고있어 사리를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이 두꺼비와 구렁이는 별다른 특별한 전설이나

설화를 나타낸다기보다는 적멸보궁을 비롯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백성의 마음이 비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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