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와 홍보/경주 문화재

경주 포석정지

금강석1 2012. 10. 26. 23:55

포석정지는 경주남산 서쪽계곡 포석계의 계류가에 있는 유적이다 석구는 유상곡수(꾸불꾸불하게 흐르는 물레 술잔

을 띄움)이며 시회를 열수 있도록 마련한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신라 제49대 헌강왕(875-886재위)이 포석정에 와서

남산신의 춤을 보고 왕이 따라 추었는데 이 춤을 어무상심 또는 어무산신이라고 했다는 기록에 처음 보이고 있으나

언제 이 석구가 조영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후백제 견훤과 신라 경애왕의 애사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는 뒷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 토하는 석구가 있었다고 하며 이 물을 받는 원형석조가 여기서부터 구불구불한 수로의

곡석을 따라 타원형 모양으로 돌려 되올아 오게 되는데 배수구의 마무리가 교란되어 있어서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개축할 때 구석재들의 이동이 있었고 새로 부소하면서 수로곡석의 원형이 크게 바뀌었다 유상곡수는

원래 중국동진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나 이는 대개 자연의 산수를 배경으로 이루어진데 반해 이 석구는 완전히 인공적이라

는데 특색이 있다

 

 석구는 굴곡진 타원형인데 긴 지름이 6.53미터 짧은 지름이 4.76미터이며 타원형 수로의 구배차는 5.9센치미터이다 수로의 너비

는 약 30센치미터, 깊이는 20센치미터이며 타원형의 수로의 길이는 약22미터에 이른다 이 석구에 물을 담아 술잔을 띄워본 결과

술잔의크기에 따라 속도가 다르고 술잔속에 술을 담은 양에 따라 다르며 절묘한 수로의 굴곡진 곳에서 물이 돌면서

흐르기 때문에타원형의 수로를 술잔이 흐르는 시간은 약 10여분이 걸리었다

 

 이 시간이며 오언시나 칠언시 한수는 쓸 수 있을것이다 현재 석구의 머리쪽에 큰 느티나무 뿌리가 수입구쪽을 밀어 올려서

높아진 상태이며 흘러나가는 배수구 쪽은 포석계의 개울에 유입되면서 급속히 낮아져 있다

 

 석구에 인수한 물은 남산 포석계의 개울물을 나무 흠대로 연결하여 대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변 일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포석"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그 형식이 삼국시대의 것으로 보여 포석정의

조영 시기를 통링 이전의 시기로 올려보는 견해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 유적은 놀이만을 위한 시설로 사용되었다기 보다는 국가적인 제례의식을 행한 다음 음복을 곁들인 여흥을 위한 시설로

사용된것으로 해석하는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2012년 10월의 막바지 경주 포석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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